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보고서
- 생활 정보/일상다반사 이야기
- 2022. 10. 3.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보고서
1.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카드 앞 장에 다 쓰여 있어요." 글 솜씨가 없었던 그가 카드 앞에 있는 글귀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가 자신의 마음이라고 나에게 말했는데, 그의 진심이 느껴지면서 참 귀엽더라고요. 죽을 각오로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고 싶은 건 그만큼 기다릴 수 없을 정도의 느낌입니다. 막 몽글몽글하고 그런 감정 있잖아요. 그럴 때 can't wait to 패턴을 사용해서 I can't wait to see you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격렬히 대적하면 심신이 쇠약해지고 점점 지쳐갈 것이다. 우리는 두 감정에게 얼마든지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질 것이다. 만남이란 우연이지만 그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습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투기도 하고 서로 이해하며 지속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2. 친구의 범주는 어디까지 일까? 요즘에는 에스엔에스에서도 친구라고 말한다. 친구는 어떤 관계이어야 할까? 당연히 우정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우정은 나이를 초월한다. 성별도 초월한다. 우정의 관계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반드시 동갑이어야만 친구라고 여기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다. 우정에는 나이도 초월하고 성별도 초월한다. 당연히 지위도 초월한다. 공감하고 연민할 줄 알고 필요할 때 도움을 준다면 친구라고 말할 수 있다. 열 살 아래 친구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어느 모임에서 만났다. 종종 전화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에스엔에스도 볼 수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친구라고 볼 수 있다. 친구에게 커다란 불행이 생겼다. 자식이 죽은 것이다. 사망 원인은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페이스북은 요지경이다. 어떤 이는 "페이스북은 세상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배울 것이 있다."라고 말한다. 배울 것도 배울 것 나름일 것이다. 나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면교사나 역행보살이라는 말도 있다.
3. 타인의 행태를 보고서 나를 돌아보았을 때 역시 배울 것이 있다. 어느 페친은 단란한 가족사진을 올렸다. 자식이 성장한 얘기도 곁들였다. 청소년기 사랑스러운 아들이 잘 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한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글과 사진이 때로 불행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글을 쓸 때 가족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아내가 신신당부한 것도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사실 자랑할 것도 없다. 숨기고 싶은 것이 더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가족 이야기를 한다. 가족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족 중의 한사람은 타겟이 되기 쉽다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글의 소재로 활용되는 것이다. 가족 울궈 먹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가족 중에는 원수 같은 사람도 있고 사랑스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식은 누가 뭐래도 사랑스럽다. 그런데 사랑하는 자로부터 슬픔이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요즘 맛지마 니까야를 읽고 있다. 머리맡에 맛지마니까야가 있어서 기회만 되면 열어 본다. 맛지마니까야 87번 경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장자여, 그것은 이와 같다.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생겨난다.
한층 성숙한 개인으로 거듭나 새로운 삶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놀라운 생존력이 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현실에도 적응할 길을 찾아내고 차근차근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을 배워나간다. 4. 긁어 부스럼 참고 기다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예정된 죽음 앞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환자에게 의료 집착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고, 환자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일이 현실에서는 흔하다. 사랑하기에 정말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고통이 되는 일이 많다. 최선과 집착은 ‘한 끗’ 차이이지만 사랑에 눈이 가려지면 이 둘을 구분하기 어렵다. 반면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관점이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 맞추어져 있다. 이들은 환자를 잃게 되면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보다 지금 이 순간 상대방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사랑으로 최선을 다하며 환자를 위하지만, 결코 집착이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순간에는 환자가 고통스러운 것보다 내가 고통스러운 것을 택한다. 환자에게서 고통스러운 연명의료를 거두어 달라고 말한다. 때로는 빨리, 때로는 편안히 환자를 놓아준다. 주변에서 왜 그리 환자를 쉽게 포기하냐고 질책해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신경 쓰기보다 환자의 평온함을 택한다. 상대방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기한다.
그와 같은 모습을 볼 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약자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체로 남과 경쟁하는 운동을 추천하는 편이다. 꾹꾹 눌러온 화를 제대로 날려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달리기나 자전거 타기도 좋으니 각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보면 된다.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이 대체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주로는 성격이 보인다. 한평생 화만 내고 살았다면 죽을 때는 분노가 더해지거나 또는 정반대로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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